올해 2월부터 대학생이 되어 CS 공부를 시작하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세상에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는 핑계로 이렇게 책 읽기를 내려놓는다는 게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기회에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과 IT 분야의 책을 함께 읽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 교보문고에 가서 평소에는 잘 가지 않던(하지만 앞으로는 자주 가야 할) "I 섹션"에서 책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려봤다. 좋은 책은 차고 넘치지만, 문제는 나의 CS 지식 수준이 그 좋은 책들을 소화하기에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적어도 처음으로 도전할 책 만큼은 내가 앞으로 읽어야 할 많은 책들에 좀 더 의욕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책이었으면 했다.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할 것 같아 고르게 된 책이 바로 <IT 세계의 괴물들>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
이 책은 단언하건대 진지하게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지만 초반 허들을 넘기지 못해 의욕이 꺾인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우선 가장 직관적인 이유는 만화책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아무리 쉬운 말과 글로 설명을 해도 머릿속으로 그림이 안 그려진다면 그건 그냥 말과 글일 뿐이다. 내가 이번 학기에 전공과목들을 공부하면서 그걸 뼈저리게 느꼈다. 수업도 인간의 언어로 진행되고 교재도 인간의 언어로 쓰여있는데, 인간인 나는 왜 컴퓨터 과학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그 세계가 내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팅 환경 속의 생태를 반도체, 소프트웨어, 언어 등을 의인화함으로써 인간의 세계관에 들어맞는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해 주는 친절한 지식툰이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컴퓨터 버전을 보는 것 같달까. 물질이 아닌 것을 물질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바꿔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상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파이썬 기초 프로그래밍, 이산수학 등의 전공과목을 공부하며 머릿속에 파편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이론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퍼즐처럼 맞춰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반도체와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상호작용, 비트와 바이트의 개념, 컴파일드 언어와 인터프리티드 언어의 개념, 데이터 구조와 알고리즘 등등...
뒷부분에는 내가 평소에 많이 궁금해하던 AI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AI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딥러닝의 컨볼루션(합성곱)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깊게 들어가면 상당히 어려운 내용인 것 같다. 이 부분도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지피티에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니 이렇게 설명을 한다.
딥러닝에서 "컨볼루션(합성곱) 연산"은 이미지 같은 데이터를 처리할 때 쓰이는 특별한 방식인데, 쉽게 말하면 이미지를 작은 창(필터 또는 커널)으로 살짝살짝 훑으면서 중요한 특징만 뽑아내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사진을 볼 때 전체를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라, 부분부분을 집중해서 보면서 "여긴 테두리야", "여긴 밝은 부분이야"라고 판단하는 것처럼요. 이 필터는 작은 사각형 모양이고, 이미지 위를 조금씩 움직이면서 그 부분에 어떤 패턴이 있는지를 숫자로 계산해서 새로운 이미지(특징 맵)를 만들어줘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딥러닝 모델은 점점 더 복잡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게 돼요. 결국 컨볼루션 연산은 이미지를 이해하려고 할 때 '중요한 부분만 골라내는 눈'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CS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2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내가 앞으로 개발자가 된다면, 혹은 개발자가 되지 않더라도 개발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나는 어떤 기술 스택을 가지고 어떤 도메인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인가 고민을 계속 해왔다. <IT 세계의 괴물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 가볍게나마 나에게 여러 가능성에 대한 힌트를 던져준 책이다.
💎독서모임 후기
모임에는 백엔드 개발자, 임베디드 펌웨어 개발자, 통번역사, 초등교사, 언어 분야 종사자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현재 한 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이라는 같은 공부를 하고 있기에 각자의 세계관에서 IT라는 8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복잡계가 되어버린 생태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대화를 열며 초등학교 선생님이 GPT를 총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창, 활, 칼을 쓰며 전쟁하던 시대에서 총의 등장은 완전한 게임체인저다. 그런데 무기는 계속 진화한다. 앞으로 GPT보다 몇 배 진보한 무기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제는 코딩과 같은 기능 위주의 숙련보다 전공, 즉 CS에 대한 저변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CS에 대한 저변은 어떻게 하면 넓어질까. 활을 마스터하면 총이 나오고, 총을 마스터하면 탱크,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드론폭탄이 줄줄이 나오는 시대에 과연 어떤 무기를 잡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지피티가 코딩을 대신 해줘서 개발이 더 편해질 수는 있다. 근데 그렇다고 그게 꼭 남들과 차별화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 같다. 요즘 시대는 굳이 비유를 하면 최첨단 무기를 쫙 깔아놓고 누구나 와서 아무거나 집어들고 싸우라고 부추기는 시대가 아닌가? 그야말로 난세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난세에 영웅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남들이랑 똑같은 무기를 집어들고 진흙탕 싸움을 할 게 아니라, 각 무기들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본질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너무 막연한 생각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언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라는 것도 결국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사용자가 모두 얽혀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이고, 이러한 상호작용을 위해 다양한 계층의 언어가 쓰이기 때문이다.
임베디드 개발자분은 언매니지드 언어, 매니지드 언어를 각각 하나씩은 마스터하는 것을 추천했다. 특히 C같은 경우 요즘엔 러스트로 많이 대체한다고는 해도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IT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언어라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C에 상당한 호기심이 생겼다. C는 하드웨어에 매우 가까운 로우레벨 언어이기 때문에, 잘 배워 놓으면 컴퓨터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큰 그림에서 개발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학기에 C프로그래밍 수업이 있는데 꼭 들어봐야겠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임베디드 개발자의 관점이 특히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제조업에 많은 비중이 실린 대한민국의 산업 지형을 고려하면, 다른 데서는 모를까 한국에서만큼은 하드웨어에 대한 제어 능력을 갖는 것이 개발자로서 상당히 큰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정해진 모임 시간이 끝나고도 한참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곰탕집으로 자리를 옮겨 뽀얀 사골국밥을 배에 채워 넣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쩌다가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심리테스트는 너무 좋아하지만 학문적 관점으로 심리를 연구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 중 마지막에 좀 재밌었던 얘기가 있는데, 중독 알고리즘과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주요 소셜 미디어 서비스들은 인간의 심리와 뇌과학, 특히 도파민 보상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들을 중독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만큼, 이제는 역으로 그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알고리즘에 대한 연구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책 한 권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오가다니... 다들 인사이트가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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