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책리뷰] 퀀텀의 세계 : 양자물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Cordilog 2025. 7. 22. 09:51

이번 파이브북스의 독서 주제는 '양자물리학'이다. 미시세계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양자'라는 개념이 물리학에서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는지는 딱히 안중에 없었다. 내가 아는 '양자'는 양자컴퓨터가 다였다. 양자컴퓨터도 주식 때문에 알고 있었을 뿐이다. 작년에 '아이온큐'를 비롯한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회사의 주가가 많이 올라서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흔들리는 양상도 포착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가격의 변동성이 단순히 '양자컴퓨터가 발전하면 비트코인 다 뚫리는거 아니냐'하는 대중적 불안감에서 촉발된 건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자산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큰 흐름은 결국 매크로 변수가 좌우하며, 결국 '뉴스'라는 건 그런 흐름에 핑계를 대주는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테마주로 주워들은 것이 내가 아는 양자의 전부라고 해도, 양자컴퓨터가 대체 뭐길래, 어떤 위력을 가졌기에 주기적으로 과학계를 흔들고 주식시장에서 테마주 행진을 이끄는가에 대한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교양 수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아 나섰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교보문고를 거닐다가 발견한 <퀀텀의 세계>는 그렇게 눈에 띄는 책은 아니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 첫 번째는 외서를 번역한 책이 아니라 한국인이 쓴 책이라는 것, 두 번째는 복잡한 물리학 공식이 없다는 것. 

양자물리를 알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다.

저자인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양자물리는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있는 여자의 보라색 치마에 붙은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보는 세상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치맛자락에 붙어있는 벌레는 입체적인 물체들을 보지 못하므로 세상이 2차원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보라색이라는 한 가지 색만 보고 있기에 애초에 색이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무색의 2차원 세상, 그것이 벌레가 이해하는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3차원 공간에 사는 우리 인간은 4차원 공간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념은 알아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없기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양자물리의 규칙을 알아낸 것도 이와 유사하며, 인간이 스스로 이해도 되지 않는 규칙을 추리만으로 알아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 지성의 위대한 승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주 작고 작은 미시 세계, 즉 양자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양자의 신비로운 현상들을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SF 영화에서나 보던 원격이동부터 미래 기술의 총아인 양자컴퓨터까지,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개념들을 마치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차근차근 풀어 나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엄청 쉽게 읽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양자 원격이동: 물체가 아닌 정보의 전송

'스타트렉'을 보면 사람이 순간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양자 원격이동은 절대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양자원격이동은 물체를 원격이동시키지 않고 물체에 대한 정보를 원격이동시킨다." 이는 물체를 구성하는 입자와 그 입자들의 상태 정보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지에서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동일한 입자들을 다시 배열하여 원래의 물체를 재구성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의 핵심에는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양자 현상이 있다. 서로 얽힌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 한쪽의 상태를 측정하면 다른 쪽의 상태가 즉시 결정된다. 책에서는 이 원리를 사교댄스를 추는 로봇을 비유로 들어 설명한다. 지구의 남자 로봇과 시리우스의 여자 로봇이 얽혀 있을 때, 우리가 원격이동시키려는 미지의 '노란 로봇'을 남자 로봇 옆에 둔다. 그리고 '벨의 측정'이라는 특별한 측정을 수행한다. 이 측정은 노란 로봇과 남자 로봇 각각의 상태를 직접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둘의 스텝이 '같은지 다른지'와 같은 관계성만을 파악한다. 이 측정 결과에 따라 얽혀 있던 남자 로봇의 상태가 결정되고, 그 즉시 여자 로봇의 상태도 결정되면서 노란 로봇의 정보가 시리우스의 여자 로봇에게 전이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서 '순간 이동'은 아닌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왜 그렇게 빠르다고 하는걸까?

양자컴퓨터의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는 큐빗의 '중첩상태 동시 연산' 능력이다. 큐빗이 0과 1의 중첩상태에 있을 때 어떤 연산을 가하면, 그 연산은 중첩된 0과 1 각 상태에 개별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작용한다.

이 동시 연산 능력은 큐빗의 수가 늘어날수록 폭발적인 속도 향상을 가져온다. 큐빗이 N개 있다면, 이들은 2N가지의 모든 가능한 상태를 동시에 중첩하여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연산을 가하면, 이 모든 2N가지 상태에 대한 계산이 단 한 번의 연산으로 동시 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책은 10개의 큐빗이 1024배나 빠르게 연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그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함수 f(x)=0이 되는 x 값을 찾는 문제에서 고전컴퓨터(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는 x값을 하나씩 대입하며 순차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모든 큐빗을 몽땅 중첩시켜 0부터 1023까지의 모든 x값을 동시에 표현한 후, 함수 f(x)를 이 중첩된 상태에 동시에 계산하여 함숫값이 0이 되는 x값만 '튀어나오게' 만든다. 이로 인해 고전 알고리즘보다 훨씬 빠르게 답을 찾을 수 있다. 

 


<퀀텀의 세계>는 이처럼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양자물리학의 개념들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책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양자물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책들도 조금씩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